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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硏習室'에 해당되는 글 8건

  1. 가을 2010/12/07
  2. 2010/12/07
  3. 가을생각 #1 2010/09/30
  4. 사랑이란 2008/12/05
  5. 너무 더워서 생각이 났어요 2008/08/06
  6. 태풍 2008/07/31
  7. 나들이 2008/07/31
  8. 여름 2008/07/31

가을

from 習作硏習室 2010/12/07 15:29
곶도 지고 잎도 지지만 
시간이 흐르매 더욱 돋는 것도 있구나. 
전화없다 서운해마라. 
잊었나 싶었을 때 생각나고 
잊혀졌나 싶었을때 모이게 되더라. 

어릴적 우정이야 봄볕처럼 짧은 것. 
늙어 새로 핀 정 묵을수록 좋으니 
술독같고 
장독같고. 

곶지고 잎지는 시간 
너와 함께라서 향기롭다. 
멀리 있어도 함께하니 
곶지고 잎지고 
비나리고 눈내리고. 
내 그때마다 네 생각하려니 
너도 내 생각 해주겠지. 

ㅡ 화정군의 노트에 달았던 댓글 
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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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習作硏習室 2010/12/07 15:20
아, 나도 꽃은 네 밖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꽃은 네 안에도 있는 것을. 
아니, 네 자체가 꽃인 것을. 
안으로 감춘 꽃술 향기되어 스며나고
고운 네 맘 밖으로 번져 꽃잎된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오늘도 난 네 향기에 취해
잠이 들고
보드란 네 꽃잎 어루만지며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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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생각 #1

from 習作硏習室 2010/09/30 20:01



갈 햇살 잎새 모여 
고운 빛 단풍되고 

따신 볕 흘러고여 
열매에 스며드니 

볕에 익고 
바람이 식혀주고 

갈은 그렇게 익어가고 깊어간다

가을 햇살
가을 햇살 by choyoungkwan 저작자 표시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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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from 習作硏習室 2008/12/05 21:41

인생이라는 사막을 걷는 나그네에게 주어지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 아니다.
나그네에게 오아시스란 그저 쉬었다 가는 장소에 불과하다.
꺼져가는 생명이 한 방울의 물로 되살아난다해도 그것은 순간일 뿐, 언젠가는 떠나야하는 곳이다.

참 사랑은 낙원이어야 한다.
참다운 낙원을 발견할 때 나그네는 짐을 놓고 안식을 얻으며 머무르게 된다. 영원히.
사랑은 잠시의 위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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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시끄럽다.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들리는 날은 바람도 없다. 너무 더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 듯 나무도 잠잠하다. 미동도 없다. 아침마다 안개가 끼고 안개가 걷히면서 매미도 시끄럽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보이는 모스크 처럼 생긴 환풍구 바람개비도 돌아가는 듯 마는 듯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  이런 날은 차라리 블라인드를 내리고 창문도 다 닫아버리는게 시원하다. 남쪽으로 난 창들을 모두 닫고 북쪽 창문만 열어놓는다. 그리고 선풍기를 천천히 돌린다. 매미 소리가 뚝 그친듯 조용하다. 베란다에서 열심히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도 안들린다. 선풍기가 공기를 휘저어 북쪽 창문에서 은근히 들어오는 제법 신선한 공기와 집 안의 묵은 공기를 섞어준다. 에어컨보다 조용한 것이 차라리 선풍기가 낫다.

어릴적엔 이렇게 덥지 않았는데. 똑 같이 30도가 넘는 똑 같은 서울인데 느껴지는 더위는 천양지차다. 처마가 길고 천장이 높다. 마당에서 돌로 높이 괴어놓은 주춧돌 위에 다시 번쩍 높은 위치에 깔린 대청마루에 누워있으면 마루 틈으로 냉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쏴 불어온다. 앞뒤 분합문을 활짝 열어젖혀 맞바람 칠 때면 에어컨이 다 무에냐. 선풍기가 다 무에냐. 비교가 안된다. 마당엔 나무로 가득하기에 공기도 덜 달궈졌던 걸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잠시라도 더울까봐 한 손으론 천천히 부채질을 해 주시고, 또 다른 한 손으론 이맛전이며 눈썹 언저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신다. 땀이라도 날세라 간간이 등짝에 손을 넣어 끈끈함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완벽한 보호 아래 온전한 사랑을 느낀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옥은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길에는 아스팔트를 깐다. 큰 길 가로수 외에는 나무를 볼 수 없는 곳이 늘어간다. 비가 와도 물은 고일 데를 찾지 못하고 하수도로, 우수관으로 흘러 자취를 감춘다. 땅으로 스며들어 살아있는 것들을 생기있게 할 기회를 빼앗긴 물들은 그저 재빨리 빗물처리장에 모였다가 강으로 흘러가버린다. 태양은 콘크리트 건물을 달구고 아스팔트 바닥을 달군다. 에어컨은 건물 내부는 시원하게 할 지언정 바깥으로는 폭염에 시달리는 행인들에게 뜨끈한 열기를 내뿜는다. 자동차도 뜨끈거린다. 계란을 깨얹으면 순식간에 프라이가 되겠지. 더 이상 나무그늘은 없고, 건물 옆에 서면 후끈하다. 사람들은 걸어다니기 어렵다. 걸어다니기 어려우니 또 차를 타게 되고, 차를 타게되니 운동이 따로 필요하다. 돈 주고 헬스크럽에 가서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돈다.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과학이 더욱 발달할 서울은 어떻게 변모할까. 이제 발달하는 과학기술은 자연과의 만남에 그 최종 목표를 두었으면한다.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되 착취하지 않고 그 생육과 번성에 도움을 주고 주인이 정원을 가꾸듯 애정을 갖고 보살피는 그런 사회, 그런 과학기술을 그린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 물이 지나가는 길을 연구하고 그것을 방해하지 않고 원활하게 하면서 이용하면 에너지며 자원은 얼마나 절약되고 지구는 얼마나 청정해질까. 과학자들이 생각해낼 아이디어들은 얼마나 기발하고 창의적일까. 지난, 그리고 지지난 세기동안 줄 베르느가 생각해냈던 아이디어들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오늘날과 미래에 살고있을 수 많은 사람들의 수 많은 아이디어중 널리 인간을 이롭게할 발상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생각만해도 가슴이 뛴다. 미래의 지구가 초록빛으로 가득해진다면 좋겠다.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올지 모를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보고는 '태초 그대로인것 같다.'라고 한 줄 평을 남긴다면 정말 기쁘겠다. 아니, 언제 올지 안올지는 고사하고 존재여부마저 불투명한 외계의 손님을 기다리느니, 바로 위에서 보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해 주신다면 정말 기쁘겠다. 내 후손들이 물려받을 지구가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태풍

from 習作硏習室 2008/07/31 21:04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천정에 달린 둥근 형광등에 눈이 부시다. 잘 떠지지도 않는 비벼본다. 덜컹덜컹 들창이 흔들린다. 엄마 아빠랑 동생까지 내가 자는 할머니 방으로 몰려왔다. 엄마가 촉촉히 물기 흐르는 배를 깎아 내민다. '자다 말고 웬일이야?" 하지만 말 없이 받아 먹는다. 달디 단 배즙이 손목을 타고 흐른다. 얼른 혀로 핥아 버렸다. 엄마한테 들킨 것 같아 헤헤헤 웃어버렸다.

쿵.
뭔가 부딛치는 소리가 난다.
와장창.
냅다 깨지는 소리.

갑자기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더니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 뒷마루로 나가신다. 미닫이 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과 바람.
응?
빗물?
비가 왜 들어오지? 집안에?
한 손에 배를 들고 나가보려 하지만, 할머니가 팔을 잡아당겨 앉히고는 못나가게 한다.
"나가지 마라. 방해된다."
엄마가 수건이며 걸레를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뒷마루에 있던 움직일 수 있는 짐들을 안방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예~엣날 할머니의 궤짝 트렁크, 내 동화책들, 와. 거기 쌓였던 짐들이 참 많았구나.

"어떻게 됐니?"
"나가시지 마세요. 뒷마루쪽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 버렸어요. 지금은 어쩔 수 없고, 내일 아침에나 살펴봐야겠어요." 할머니의 물음에 아빠가 대답한다. 쫄딱 젖어버린 아빠. 춥다. 어른들이 걸레를 들고 들이친 비를 닦아내고 정리하는 것을 보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이다.
조용하다. 뒷마루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있어야 할 하늘색 슬레이트 지붕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진짜 새파란 하늘이 빛나고 있다. 신발을 신고 뒷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진짜 파란 하늘이다. 입이 딱 벌어진다. 안방에 덧달아낸 뒷마루쪽 지붕은 날아가고 장독대 위 항아리도 몇 개는 깨졌다. 옥수수밭 옆 개집에서 뛰어나온 초코가 마구 꼬리를 친다. "너 안무서웠니?" 옥수수대도 다 드러누웠는데 호박넝쿨은 담장 울타리에 매달린채 그저 멀쩡하다. 떨어져 나간 우리집 지붕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나들이

from 習作硏習室 2008/07/31 21:04
여름은 참외며 토마토, 수박 등등 먹을 것들이 지천이라 흐뭇하다. 날이 더워져 겨드랑이 촉촉이 젖을 무렵이 되면  찬합에 밥이며, 과일을 싸가지고 가는 데가 있다. 오늘도 보자기 안에는 불고기며 나물, 여러가지 전 나부랭이들이 차곡이 담긴 찬합이 있다. 또 하나, 할머니가 꼭 챙기시는 게 있다. 꽃이다. 장미같은 꽃나무와 꽃삽, 전지가위 등이다. 이렇게 먹을거와 꽃을 챙기면 신이 나야 할 텐데, 꼭 이맘때 가는 나들이는 분위기가 수상하다. 왠지 조용한 것이 차분히 가라앉아 까불어제낄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자동차는 어느새 한강을 건넌다. 쇠로 된 다리를 지나간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머리카락도 날리고 미식거리던 것도 날려보낸다. 나는 바람을 더 느끼려고 창밖으로 손을 내민다.
"밖으로 손내밀지 마라. 다친다. "
"어떻게 다쳐"
"다른 차가 부딪히면 어떻하니?"
차 안으로 손을 쏙 집어 넣는다. 내 손이 잘라지면 큰일이지. 부시럭부시럭 검통에서 얇은 만화책을 꺼낸다. 이 검엔 판박이도 있고 만화책도 있다. 검도 씹고 만화도 보고, 맘에 드는 데에 판박이도 문질러 그림을 새긴다. 지금은 택시 안이라 문지를 데가 마땅치 않다. 손등에다 문지른다. 판박이 얇은 종이를 지들끼리 붙지않게 잘 펴는게 중요하다. 문지르다 보니 속이 다시 안좋아진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얼마 안되어 도착한 목적지. 큰 철문앞엔 군인 아저씨들이 지키고 있고, 그 둘레엔 사슴무늬가 예쁜 쇠울타리가 둘러져있다. 그 안에는 둥글둥글 모양을 낸 향나무도 있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것 같은 버드나무도 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야한다.
조용하다.
함께 가는 사람들의 숨소리나 타박거리는 발소리만 들린다. 여기오면 한숨들도 많이 쉰다. '휘유-' 하고. 
푸드덕하고 새가 날더니 깍깍 까치가 운다. 우리가 왔다고, 손님이 왔다고 알려주나보다. 손님이 와도 여기 주인들은 일어서 맞으러 나올줄을 모른다. 끝간데 없이 줄 맞춰 세워진, 햇살을 받으면 눈마저 부신 하이얀 돌비석들 아래 잠들어있다. 나라를 위해 죽은 국군아저씨들은 지금 잠들어있다.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거다. 자고 자고 또 자다가 때가 오면 일어나 하늘나라에 가는 거다. 그때까진 저어 쪽에 있는 사람들 처럼 와서 시끄럽게 울고 몸부림을 쳐도 그냥 잠만 자야한다.

'육군 대위 이 성하의 묘'
할머니는 물수건으로 비석을 닦는다. 마치 땀흘리고 먼지 묻은 아이를 닦아 주는 것 처럼 깨끗한 물수건으로 비석을 닦는다. 아빠는 돗자리를 깔고 향불을 붙인다. 바람이 불어 라이타 불이 자꾸만 날라가니까 한 손으로는 바람을 막고 기다린다. 불이 제대로 붙으면 향을 흔들어 불꽃은 없애고 담뱃불 같은 불씨만 남긴다. 향냄새가 곱다. 군데군데 다른 비석 앞에도 향불은 있지만, 우리 집에서 가져온 향내가 제일 좋다. 우리 식구들은 울지 않는다. 엄마랑 형님이랑 와서 울면 삼촌도 맘이 아프겠지. 모두 비석 앞에 와 서서 고개를 숙인다. 말 없이 가만히 기도한다. 비석 옆에 장미나무를 심고 둥글게 아치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말이 없다. 너무 조용하면 좀 이상하다. 조용한 것이 이불처럼 가만히 나를 누르는 것 같으니. 나무에 물을 주고 밥을 먹는다. 온갖 맛난 것을 싸와서 먹으면서도 역시 말이 없다.

뻐꾹 뻐꾹.
뻐꾸기가 운다. 여기서는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다. 모두 다 운다. 신나게 노래하면 혼날지도 모르니까. 처량맞게 뻐꾹거리니까 우는거지.
나도 조용히 뛰어다닌다. 까불어도 입 다물고 까불면 혼나지 않는다. 후후.
뛰어다니다 지친 소녀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눕는다. 할머니가 가만히 이맛전을 쓰다듬어 주신다. 좋다. 잠이 솔솔 올것만 같다.
빰~빰~빠바바~~
어디선가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작은 소리가 아닌데도 조용함을 깨지 않는 묘한 나팔소리다. 이 나팔소리에 다들 잠을 깨지 않고 자는지도 모르겠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파란 나뭇잎들 사이로 바람이 산들 불어온다. 살풋 땀이 뱄던 이마가 시원해진다. 여름이다. 슬프도록 조용한 여름이다.  

여름

from 習作硏習室 2008/07/31 21:03
소녀는 담장 벽돌 틈사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보들보들한 벨벳같은 녹색이끼가 느껴졌다. 비가온지 며칠 되지 않아 촉촉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고 몇 날이 지나면 이것도 촉촉함을 잃고 까실까실해지겠지. 아빠 턱수염만큼은 아니지만. 벽돌사이에 패인 홈을 따라 손톱을 세우고 주욱 밀어내면 이끼는 도로롱 말리면서 벗겨진다. 그 재미에 소녀는 혓바닥을 입술새로 샐쪽 내민채 열심히 열심히 꼼꼼하게 이끼를 밀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애, 너 뭐하니?"
이끼를 말아 떨어뜨리던 일에 빠져있던 소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제법 뜨거운 햇빛아래라 얼굴은 벌겋게 익고 귀밑머리를 따라 땀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해받은 소녀는 인상을 썼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뜨겁지도 않냐? 햇볕에서."
아이 보는 언니는 이상한 아이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높은 문턱을 넘어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소녀는 땅바닥을 보았다. 자기가 무심코 담벼락에서 벗겨낸 이끼들이 새카맣게 죽은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보들보들한 초록 벨벳 아랫쪽은 끈적이다고 해야할까 아님 미끈덩거린다고 해야할까 아뭏든 시꺼먼 것들이 담과 이끼를 이어주고 있었다. 손을 내려다 봤다. 손톱밑이 새까매졌다. 할머니한테 꾸중듣기 전에 얼른 씻어야겠다. 아까 언니가 들어갔던 대문 안으로 냉큼 뛰어들어갔다.


한 길도 넘는 깊이의 우물물은 컴컴한 저 아래서 시커멓게 혹은 시퍼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심연. 확실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이 깊은 우물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읽었던 그 말이 생각난다. 심연. 어쩐지 끝이 없다는 느낌이다. 저 아래는 끝도 없이 깊고 한 없이 깜깜하겠지. 저기로 빠진다면 무서운 속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은 아닐것 같애. 눈을 감았는지, 아니면 떴는지 모를 그런 분간안될 어둠속으로 천천히, 천천히 반쯤은 둥둥 떠있는 느낌으로 빠져들어가겠지. 한 없이 한 없이...
아냐, 아주 끝이 없진 않을꺼야. 어느 순간 다시금 빛이 나타나고 그럼 그 안으로 홱 빨려 들어가서는 다른 세상으로 갈지도 몰라. 혹시 모자장수와 토끼와 들쥐가 차 마시는 자리에 초대받게 될지도 모르지. 그렇담 난 앨리스와 함께 차를 마시게 될까, 아님 내가 앨리스가 되는 걸까?
소녀는 킥킥 웃으면서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두레박을 던져넣었다.
쏴아. 대야에 물을 쏟아부었다. 사방으로 물이 튀어 나비무늬가 새겨진 청록빛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은 소녀의 발을 적셨다. 손을 씻기전에 얼굴부터 씻었다. 푸푸푸. 얼음같은 물이  달아오른 뺨을 식히고 목덜미의 땀기를 닦아냈다.  기분 좋다. 이상하지? 이렇게 찬 물이 겨울이면 미지근해지니말야. 옆에있는 헌 칫솔로 손톱밑도 싹싹 씻어 말끔해지자 맑은 분홍빛 손톱이 빛난다.

소녀는 만족하게 웃으며 마루쪽으로 뛰어갔다.
"할머니, 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