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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범산목장 아이스크림

이대 범산목장 아이스크림

Non-GMO 유기농 사료에 퇴비로 키운 젖소. 여기서 짠 우유를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는다는 75도, 15~20초 살균법으로 처리한다는 횡성 범산목장의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가 이대 앞에 생겼다.

너무나도 뜨거웠던 지난 주일, 작년 여름 제주 여행할 때 들렀던 성 이시돌목장을 생각나게 하는 가게가 우리를 불렀다. 녹차와 바닐라 중에 고민하다 바닐라를 골랐다. 콘 대신 컵으로 받는 딸에게 "그럼 양산 들을 손이 없잖아?"하고 물었더니, 다 먹기도 전에 녹아흐를까봐 그랬단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날이 워낙 뜨거워 컵에 담지 않았으면 그냥 줄줄 흐를뻔 했다.

계산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받아 나오는데 웬 요거트를 하나 주신다. 알고보니 유기농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유기농 요거트를 하나 주는 이벤트를 하는 중이었다. 감사히 받았다.

딸이 한 입 떠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다. 음? 눈이 번쩍 뜨인다. 향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한 번 먹었다. 진한 바닐라와 우유향에 감탄했다. 하지만 지방 함유량은 그리 높지 않은지 고소하달까 묵직한 맛은 없다. 오히려 약간 셔벗이나 요거트 아이스크림 같은 그럼 가벼운 맛이다. 맛은 괜찮다. 유기농이라니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가격은 역시 비싸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하나 가격은 3,800원. 그래도 이벤트 하는 동안에는 아이스크림+요거트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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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4 | 지도 크게 보기 ©  NAVER Corp.
2017/06/24 22:39 2017/06/24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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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3:34~40)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라주1고 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주2고 '명령'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한다. 명령하지 않는다. 몸으로 보여주신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신다. 우리 이야기, 하소연을 들어주신다. 가르치기 전에 위로하시고 우리를 추스리게 하신다.

이 '사랑하신다' 는 말은 윤리를 낳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행동원리, 규범을 갖게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주3 는 말은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복음이 윤리는 아니지만, 윤리의 역할을 하게된다. 나를 못난 그대로 봐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앞에서 나를 추스리고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추스러 바로 설 수 있게 한다. 사느라 지은 죄.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로 자격 없는데도 불구하고 용서 받은 나. 이것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 안에서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강자의 덕목이다. 누가 나를 강하게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 복음이다.

상처 받은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살자. 지금껏 지속되고 있는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은 우리를 늘 비상상황에 있게 하고, 이것은 이기적 본능에 충실하게 한다. 합리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들. 세상 나라 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자.

 

 

지난 주일은 이화여자대학교회 교목 양명수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마지막 설교내용을 나름 요약해 보았습니다.

 

 

 

 

 

 

Footnote.
  1.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5) [Back]
  2.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18) [Back]
  3.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8) [Back]
2017/06/24 07:02 2017/06/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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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색칠공부 퀴버Quiver

 색칠공부 퀴버비전 

아이들과 함께 3D 색칠공부를 해보고 싶어 전에 소개한 적 있는 colAR Mix 앱을 다시 설치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colAR Mix라는 앱이 앱스토어에 없었던 것. 대신 비슷해 보이는 앱을 설치했는데 그것이 지금 소개하는 '퀴버Quiver' 라는 앱이다.

앱스토어에서 colar mix를 검색하면 이 퀴버quiver가 제일 먼저 나온다. 퀴버 소개 첫 문장도 '증강현실 오리지널 컬러링 앱 "colAR Mix"가 이제는 Quiver입니다!'. 아마도 컬러믹스colAR Mix를 개발했던 푸테코Puteko사가 인수 되었든지, 아니면 이름이 바뀌든지 했나보다. colarmix.com으로 가도 바로 퀴버비전Quivervision으로 연결되고, 색칠공부 도안이나 캐릭터들도 모두 그대로다.

보통 색칠공부 앱이 기기 화면을 터치하기만 하면 저절로 색이 칠해지는 방식인데 비해, 이 퀴버는 종이에 프린트 해서 실제로 색을 칠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취미, 색칠 능력 키우기에 안성맞춤이다. 유,무료 도안도 풍부하고 요즘 서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컬러링 북처럼 지나치게 복잡하지도 않다. 색칠한 다음 스마트 기기에 설치한 앱을 실행해 입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 했던 그림은 레오의 컬러플 월드 팩 중 어린 사자 레오가 축구하는 레오-사커Leo Soccer와 포드 자동차, 그리고 맨 처음 나왔던 새그림 Pukeko 세 가지였다. 레오 사커는 골을 넣고 환호하는 것을 게임처럼 할 수 있어 좋아했고, 자동차는 낮-밤 모드로 다르게 달린다. colAR Mix 앱이 맨 처음 나왔을 때 함께 제공된 벌레를 잡아먹는 새 그림은 여전히 인기였다.

 

quiver 퀴버 

이용방법

  1. 퀴버비전 사이트에서 밑그림을 인쇄한다.
  2. 인쇄한 밑그림을 색칠한다.
  3. 스마트기기에 퀴버Quiver 앱을 설치한다.
  4. 앱을 실행한 다음 플레이 단추(나비그림)를 터치해 뷰어를 연다.
  5. 색칠한 종이를 스마트기기로 비춘다. 이때 전체 페이지가 다 비춰야 한다. 전체 페이지가 비춰지면 푸른색으로 화면이 표시되고, 잠시 후 색칠한 그림이 입체로 보인다. 어떤 각도에서든지 다 볼 수 있다. (화면이 붉은색으로 보이면 그림과 스마트 기기의 거리를 조금 더 떨어트린다. )

 

특징

  1. 가격 : 무료 (앱 자체는 무료지만 도안에 따라 유료 도안도 있다)

  2. 144MB

  3. 밑그림을 인쇄해 실제로 근육을 사용해 색칠한다. 교육효과 및 취미활동으로 사용 가능하다.

  4. 퀴버 에듀케이션Quiver Education 앱이 따로 있다. 8.79불 짜리 유료 앱이다. 좀 비싼 듯 하지만 평생 모든 팩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5. 또 다른 무료 앱으로 퀴버 패션Quiver Fashion도 있다. 주로 소녀취향의 모델들의 옷을 색칠하는 앱이다.



2017/06/22 20:17 2017/06/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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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견해

처음부터 말하지만 나는 방언 기도를 못하고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방언에 관한 극단적인 생각들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방언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뜨겁게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보면 나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감탄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방언 기도에 대해 색다른 정보를 접하고 깜짝 놀라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에 대해 차분히 정리를 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 방언이란

1) 사전적 의미의 방언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방언은 다음과 같다.

  1. <언어> 한 언어에서, 사용 지역 또는 사회 계층에 따라 분화된 말의 체계.
  2. <언어> [같은 말] 사투리(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
  3. <기독교> 신약 시대에, 성령에 힘입어 제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외국 말을 하여 이방인을 놀라게 한 말. 또는 황홀 상태에서 성령에 의하여 말해진다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말.

 

영어사전(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에서 tongues를 찾아보면 '살과 근육으로 된 기관. 포유동물의 입속에 있다(the flesh muscular organ in the mouth of a mammal…)'라는 설명과 함께 '아래에 있는 the gift of tongues를 보라'는 말이 나온다. 또 그 아래에는 'speak in tongues'라는 것도 나와 있는데 그 뜻은 각각 다음과 같다.

the gift of tongues - the power of speaking in unknown languages, regarded as one of the gifts of the Holy Spirit(Acts 2).

방언의 은사 - 모르는 언어로 말하는 능력.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 간주된다(사도행전2장).

 

speak in tongues - speak in an unknown language during religious worship

방언으로 말하다 - 예배 중 모르는 언어로 말하다

 

2) 성경에 기록된 방언

맨 처음 나타난 방언 현상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온 집안에 가득했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 사도행전 2장 4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지만 그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이 역사하실 것을 마가복음 16:17, 18절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1) 성령의 은사

방언은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의 하나다.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다른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린도전서 12:7~10)

(2) 방언의 종류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이에 대해서는 이미 방언에 관한 성경 구절이란 글에 정리를 해둔 바 있습니다. 혹시 제가 놓친 구절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방언은 그 대상이 하나님만을 향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은 외국어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이 이에 해당된다. 오순절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각지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있었는데, 이들은 아마 디아스포라1였나보다. 이것을 듣고 놀라 외쳤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2:8)"

외국어로서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기에 통역도 가능하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 28절, 30절과 14장 5절, 13절, 26~28절에 보면 방언과 방언 통역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방언 통역 역시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사도행전 2장에서는 통역 없이도 각 지역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는 외국어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

 

나.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외국어로서의 방언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이라면,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알아듣는 자가 없는 방언에 대한 기록도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4:2)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밀한 언어로 1:1로 하나님과 독대하다니, 방언의 첫째가는 유익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방언은 다른 사람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자신도 그 뜻을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언 통역의 은사가 없으면 자기 입으로 한 방언의 뜻을 자신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4:13, 14)

 

(3) 방언을 위한 지침

가. 방언하기를 원하심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4:4~5)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18)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4:39)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셨고, 바울 자신도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는 것을 감사한다' 라고 했다.

나. 예배 중엔 교회의 덕을 세울 것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고린도전서 14:5~6)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4: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린도전서 14:19)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고린도전서 14:26~28)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고린도전서 14:37)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린도전서 14:40)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에서는 통역되지 않은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더 유익하다. 찬양도 설교도 없이 교인들이 각자 방언만 한다면 예배가 어떻게 이뤄지겠는가. 따라서 공적인 예배자리에서 방언할 때에는 통역을 세우고 2, 3인만 해야 하고 통역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하지 말고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를 선지자나 신령한 자로 여기고 고집을 부릴 때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명심하라고 말하는 한편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모든 것을 적당히, 질서대로 하라고 하셨다.

 

 

2. 방언에 대한 견해들

분명 하나님 말씀은 하나인데 해석들은 어찌나 분분한지 견해들도 다양하다. 그것은 방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던 중 접하게 되었던 여러 견해다.

 

1) 부정적 견해들

(1) 방언의 시대는 끝났다

방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방언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 생각의 근거는 두 가지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고린도전서 14장과 사도행전 19장의 성령세례와 방언의 기록 이후에 방언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이 없다는 것과 사도행전 28:7~10에 기록된 멜리데 섬의 신유사건3 이후로 기적적인 은사의 기록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고린도전서 13:8에 기록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사도시대 이후 방언은 '그쳤다'는 입장이다.

(2) 방언은 가짜다 - 학습된 것이다

방언이 끝나 사도시대 이후 더는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오늘날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방언은 무엇인가. 그저 학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사람들이 방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집단최면상태에 가까운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자기 목소리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몇 마디 음절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하게 되거나 록 콘서트에 열광하는 팬들의 반응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3) 방언은 마귀의 역사다

방언의 시대가 끝났고 오늘날의 방언들이 학습된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으며, 방언은 미혹의 영이 역사하는 것이라는 견해다. 그것은 다음 두 주장과 연결된다.

가. 다른 종교에도 있다

놀랍게도 방언은(적어도 방언과 비슷한 현상은)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언, 주문 등을 되풀이하여 외우거나 영적 황홀경에서 의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림으로써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체험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언은 마귀의 역사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나. 예수회와 관련된 음모론

예수회의 음모로 교회에 천주교의 방언 운동이 일어나게 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개최하는 각종 부흥회, 기도회 등의 모습을 보면 천주교의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간증이 이를 증거로 제시된다. 4

 

2) 긍정을 넘어선 견해들

(1) 방언은 성령 침례 및 구원의 증거다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방언은 성령세례의 증거며 따라서 구원의 증거이므로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견해다.

(2) 방언은 신앙의 성숙이나 믿음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이 견해는 방언을 구원의 증거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신앙이 성숙해지면 받는 것이므로 그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본다. 따라서 누구나 늘 방언 받기를 사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방언에 대한 나의 견해

1) 성령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성령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령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부활하신 다음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오셨던 그때 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까지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성령시대에 속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전된 우리 안에(내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각자에게 알맞은 능력을 주신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2:7~10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5고, 갈라디아서 5:22~23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6다.

성령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선한 열매를 맺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데 어째서 그 가운데 방언의 은사만 끝날 수 있을까. 온전한 것이 오기 전까지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폐하거나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이 땅에서 받았던 은사들은 그치거나 폐해진다.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이 세상에선 필요했지만, 온전히 알게 되는 그곳에서는 더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사랑만은 남아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13절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8~10)

 

2) 학습된 방언, 악한 영이 역사하는 방언도 있다

방언이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날 방언으로 보이는 모든 현상이 다 성령의 역사 하셔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방언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럽거나, 교회 분위기나 믿음의 선배들의 강권으로 방언을 사모한 나머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억지로 '익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중에는 '할렐루야'를 되풀이하라거나 주기도문을 500번씩 반복한다든지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방언을 듣고 따라 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다. 나도 남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 하나님만 아는 방언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이 주시는 은사, 선물이다. 내가 배우고 연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짜다.

이렇게 억지로 방언을 구하려다 보면 악한 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베드로전서 5:8). 시기 질투, 초조함을 바탕으로 해서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마귀의 먹이가 되기에 십상이다. 실제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젊은 신학교 시절 밤에 산기도 갔다가 큰일 당할 뻔했던 경험담도 들을 수 있다. 기독교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입신', '쓰러짐'의 용어를 써가며 성령 운동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방언이나 예언은 물론 환상과 환청 등 기이한 경험을 은사라는 포장 아래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마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로 생겨난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함정에 빠졌던 사람 중엔 직분 맡았던 사람들도 있다. 문선명은 주일학교 선생님이었고 박태선은 장로였다.

 

3) '구원의 증거=방언'이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성도들이 무리하게 방언을 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방언을 성령을 받은 증거나 더 나아가 구원을 받은 증거로 간주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다르게 주시는 아홉 가지은사 중 하나가 방언이다. 내가 비록 방언은 못 한다 할지라도 다른 여덟 가지 은사(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영 분별, 방언 통역) 가운데 하나를 받았을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만 가지고 성령을 받았다, 아니다를 논할 수 없다.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거라는 주장을 보면 사도행전 19장 말씀7 을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역시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가운데 방언과 예언 두 가지일 뿐이다. 설사 이 구절이 확실한 근거가 된다 해도 그렇다. 예언은 어디로 가고 똑 떼어서 방언만 그 증거로 삼는 것인지 궁금하다.

더구나 방언을 구원의 증거로 여기는 것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서 3:27)' 하는 말씀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구원에 말씀 외에 무슨 다른 증거가 필요한가. 증거와 확신이 필요하다면 말씀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밖에 없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

말씀을 믿고 의심하지 말자8.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4) 방언은 신앙의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방언을 성령을 받은 증거나 구원의 증거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신앙의 수준이 높아야 방언을 한다,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거나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믿는 가족을 따라 예배드리러 갔다가 갑자기 방언을 하게 되면서 믿게 되는 사람도 있다. 또 반대로 오랜 세월 믿음을 지켜온 어르신들이나 목회자들도 방언을 못 할 수도 있다. 방언이 신앙 수준에 따라 오는 것이라면 방언하는 초신자의 신앙 수준이 방언 못 하는 어르신이나 목회자보다 월등하다는 말이 된다.

 

5)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9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가기보다는 자기 잣대로 해석하기를 잘하고 양떼처럼 그리로 몰려가기도 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신앙의 기준은 -생활의 기준도 마찬가지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말씀을 오려내고 붙여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뜻을 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은 교회에서 예배 시 통역을 세우고 두세 사람이 차례를 정해 할 수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공적인 자리에서가 아니라 홀로 하나님과 기도할 때 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질서 있게 순리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방언하는 것을 금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성령이 역사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천국 갈 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하는 한 성령의 은사도 계속된다. 방언 하나만 똑 떼어 끝났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마지막 때를 사는 이때, 영육 간의 혼탁함은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더 할 것이다. 마귀는 믿는 자마저 하나라도 더 꾀려고 애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방언 현상 전부가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나나 내 가까운 사람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100% 마귀의 장난이라고 도매금으로 묶어버려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쓰실는지 모른다. 마귀의 음모나 장난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열심에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10고 하실 수도 있다.

 

 

[참고했던 글]


 

 

1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네이버 국어사전
2 Simon Kistemaker(복음주의 신학자, 신약성서 학자, 주석가)의 주장을 언급한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방언이란 무엇인가
3 바울은 로마를 향한 마지막 전도 여행 중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지고 표류하다 멜리데 섬(말타 Malta) 에 상륙하여 구원을 얻는다. 보블리오라는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열병에 걸리게 되었다.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자 그의 열병이 나았다.
4 가. 전직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가 회심 후 교황청과 예수회의 음모를 낱낱히 밝혔다고 한다. 나. 하지만 이것으로 은사주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했을만큼 초기 은사주의가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반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 한편으로는 알베르토 리베라의 사기극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Alberto Rivera wiki 알베르토 리베라 만화
5 성령의 은사.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다른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6 성령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love)희락(joy)화평(peace)오래 참음(longsuffering)자비(gentleness)양선(goodness)충성(faith)온유(meekness)절제(temperance)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1~7)
9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명기 5:32)
10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11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신명기 5:32)
12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2017/06/21 15:50 2017/06/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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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미술수업

A4용지 이면지로 요트 접기

A4용지 이면지로 요트 종이접기

시원한 바람, 두둥실 흰 구름, 빛나는 수면, 그 위를 나르는 요트들…

꿈만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이면지로 요트를 접어 꾸미면서 놀아보세요. 쉽고 재미있습니다.

 

준비물

  1. A4용지 이면지, 달력종이
  2. 수채화도구 - 물감, 붓
  3. 펜, 풀, 가위

 

요트접는모습

 

만들기 동영상

이 만들기는 다음 동영상을 보고 만들었습니다.

 

완성된 작품들

완성요트

완성된 요트

완성된요트

완성된요트

 

2017/06/08 14:36 2017/06/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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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일상

6월 근황

어머니 돌아가신지 꼭 한 달 하고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아픔도 슬픔도 없는 천국 가셨기에 슬퍼할 이유도 없고, 이곳에서 더 못 뵙는다는 아쉬움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충격이 아주 없을 수는 없나 봅니다. 면역력이 살짝 약해졌는지 결막염과 목감기가 오는 듯 하여 어제 현충일은 모처럼 뒹굴뒹굴 쉬는 날로 삼았습니다. 오늘은 멀쩡하네요.

 

맥심커피믹스

주룩주룩 밤새 비 내린 아침은 아직 어둑한데 엄마 장례식장에서 챙겨온 커피 믹스를 꺼냅니다. 어차피 다 돈 주고 산 것, 반품하고 기증도 하고 그래도 남은 물품은 다 집으로 챙겨와 나눠가졌습니다. 다 마시고 딱 네 개 남았네요. "엄마~"하고 옆으로 가면 "응~"하고 웃으실 것 같습니다. 그 미소가 보고 싶어지네요. 엄마 냄새는 언제까지 기억날까요?

베사메 무쵸, He'll have to go, 청실홍실… 요즘 아버지가 부쩍 즐겨부르시는 노래입니다. 짧은 연애시절 집으로 가는 길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길1을 걸으며 불러주셨다지요. 그런 로맨틱 가이셨던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십대 젊은 연인들이 손 꼭 잡고 봄 밤을 걸었겠지요. 덕수궁에서 광화문까지 길지도 않은 길을 다 걷고 나면 얼마나 헤어지기 아쉬웠을까요. 평생을 해로해도 먼저 간 아내가 아쉽고 그리운 것은 연애시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어쩌면 더 할 수도 있겠지요. 많이 허전해 하셔서 지난 주일엔 예배 마치고 밤까지 함께 시간 보내드렸습니다. 영화도 함께 보고, 구글링 하는 법도 알려드리고, 에버노트 설치하고 스크랩 하시려면 코끼리 누르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유튜브에서 좋아하시는 음악 찾아 버전별로 함께 듣기도 했습니다. 재생목록에 추가하는 것은 자꾸 잊으십니다만, 뭐 자꾸 해봐야 느는 것이겠죠.

 

결막염 안약

어제 아침부터는 침만 삼키면 목이 아팠는데 기도하고 푹 쉬고 잘 먹었더니 다 떨어져나갔네요. 눈곱, 충혈, 이물감 등등의 결막염 증세는 남아있어 동네 가정의원에 가서 안약을 두 병 받아왔습니다. 의학의 힘은 놀랍습니다. 하루 서너번 한 방울 씩 넣는 것만으로 그 불편함이 싹 가시니 말입니다.

 

치즈케이크와 커피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어제 막내가 사온 치즈 케이크를 꺼냈습니다. 커피 생각이 났다기 보다 케이크를 먹기 위해 커피를 끓였다는 것이 맞을거에요. 노란색 상자에 들어있는 노브랜드 치즈크림케익. 한 입 먹어보니 놀랍습니다. 식물성 크림이 19% 가까이 들어있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만 맛도 제법 진하고 촉촉하니 식감도 좋습니다. 가격대비 굿. 엄지 척입니다. ㅎㅎ 먹는데 바빠 케이크 사진은 미처 찍지 못했네요. 대신 링크 첨부합니다.>>치크크림케익

요즘 '방언에 대한 견해'라는 글을 쓰고 있는데,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제 생각대로 휘리릭 써버렸다가 읽은 분들을 그릇된 글로 인도하게 되면 그런 낭패가 없을테니까요. 그러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벌써 12시가 넘었네요. 또 부지런히 나가야겠습니다. 모두 힘찬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1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 고개를 옛날에는 '사랑의 언덕길'이라고 했다는군요. 덕수궁 돌담길/서울신문
2017/06/07 12:26 2017/06/07 12:26